2025년 9월 10일 수요일

코드가 법이다, 그 후

"옥주현, 수년간 소속사 불법 운영···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상 법인과 1인 초과 개인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은 대중문화예술기획업으로 등록해 활동해야 한다. 이는 필수적 법적 요건으로 위반할 시 형사 처벌을 포함한 법적 제재를 받는다."고 하여, 법령상 특정 업종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누락했으니 '불법 운영'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실수로 누락했다는 해명이 있었다. 나는 이 해명이 맞고 기사가 악의적으로 나왔다고 짐작한다.

 

대한민국 법령 체계가 어떤 국가적 개념들이 모인 단일한 뿌리에서 자라나는 게 아니라 실무 주체인 주무기관이 있고 그 주무기관 산하에 소관법령이라는 형태로 나열된다는 걸 깨닫고 놀랐었다. (예: 산림청 소관법령) 그리고 각 주무기관은 자기 사업을 각자 영위하고 거기에 필요한 법률을 각자 정부입법으로 만들어낸다. (중간과정 매우 생략 주의) 이 과정에서 개념적으로는 인접한데 소관이 갈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일반인이 보기엔 이상한 경우도 생긴다. (예: 화재는 소방청 소관이지만 산불은 산림청 주관이고 소방청은 협조)

 

이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시시 때때로 바뀌는 법령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때로는 '담당 공무원이 나보다 몰라서 관련 규정 차근차근 알려줘야 했다' (예: 캐스퍼 전기차는 경차 아니고 소형차여서 취득세 부과) 류의 경험담이 종종 보인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세법, 건축법, 소방법 같은 건 각 분야 전문가가 업무적인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 법령을 꾸준히 따라가는  전문성도 구비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공무원을 욕하고 다그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미 일선 공무원은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분장하고 혹은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한쪽으로 쏠려서 부담을 느껴 면직하거나 목숨을 끊거나 하고, 순환 보직으로 계속 바뀌는 와중에 인수인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서 계속 새 사람이 전혀 모르는 일을 떠맡는다고 한다.

 

나는 옥주현의 소속사도 행정 절차 중 하나를 누락했을 뿐이고 억울한 입장이라고 이해했으므로,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는 생기지 않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ChatGPT를 열어서 물어보았다. 다음은 내가 입력한 질의들이고 수정이나 재시도는 없이 한 번에 쭉 진행되었다.

  1.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144/0001066309 이 기사를 읽을 수 있나?
  2.  좋아. 나는 실수로 누락했다는 주장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https://law.go.kr 에서 정보를 찾아봤지. 아래 URL은 검색 결과 페이지야. https://law.go.kr/lsBylSc.do?menuId=9&subMenuId=55&tabMenuId=261&query=%EB%8C%80%EC%A4%91%EB%AC%B8%ED%99%94%EC%98%88%EC%88%A0%EA%B8%B0%ED%9A%8D%EC%97%85#liBgcolor2 https://law.go.kr/LSW/aai/searchList.do?query=%EB%8C%80%EC%A4%91%EB%AC%B8%ED%99%94%EC%98%88%EC%88%A0%EA%B8%B0%ED%9A%8D%EC%97%85&pageNum=1&pagePer=10&searchType=1&modelYn=N&indexNames=&version=&ignoreWord=&keywordSearchYn=N&searchResultLsKndCd=0&firstSearchKeyword=&preSearchKeyword=&searchKndCd=0&mainType=main&detailSearchYn=N&lsChapCd=&lsKndCd=&upCptOfiCd=&cptOfiCd=&startAncYd=&endAncYd=&startEfYd=&endEfYd=&startPrmlYd=&endPrmlYd=&startAdmRulEfYd=&endAdmRulEfYd=&sortCode=0&bylClsCd=&chk= 검색 결과를 보면 일단 법률 수준에서 바로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이라는 키워드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아. 법률 하위의 시행령이나 규칙 같은 걸로 내려가야 실질적인 용어로 검색이 되고. 여기서 내가 너한테 요청하고 싶은 건, 대중문화예술기획업 같은 업종을 등록하는 행정절차가 필요하다는 걸 당사자 시민이 알려면 어떤 문서들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 건지 니가 심층적으로 검토해줬으면 해.
  3.  너는 애초에 저런 법이 있고, 저런 업종에 대한 등록 의무가 있으리란 걸 인지한 사람을 전제로 하고 그 이후의 실무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했어. 내가 궁금한 건 애초에 저런 법이 있어서 따라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시민 당사자가 어떻게 예상할 수 있냐는 거야. 바꿔 말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가 행정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법률에 영향을 받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4.  좋아. 내가 질문한 방향에 맞게 답이 된 것 같아. 하지만 결국 1)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 2) 정부에서 잘 알려줘야 하고 3) 누락은 여전히 생길 수 밖에 없다 ...라는 거잖아? 니가 정리는 잘 했지만 결국 실상은 매우 실망스럽네. 그럼 가급적 최신 연구나 세계 각국의 실험적 행정을 검색해서 이 점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봐줄 수 있나?
  5.  다음 단계로 제시된 3가지 중에서 2와 3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
  6. B를 해줘. A는 B가 끝난 다음에 진행할지 판단할 테니까 다시 물어봐줘.
  7.  B의 결과는 기대보다 미흡하네. A를 보여줘.
  8.  1,2 모두 지금 관심사는 아니야. 오히려 궁금한 건, 위의 yaml을 원래의 법령에서 추출할 때 각 조항을 어떤 문법에 따라 분석하고 yaml로 추출할 조항과 무시할 조항을 선택했는지야.
  9. 좋아. 실제 원문에서 추출한 yaml을 보여줘. 
  10. 명확한 패턴이 있는 조문에서 if-then-else를 뽑아냈다는 건 이해했고 결과도 좋아 보여. 그럼 반대로 원문에는 있지만 yaml 추출에 사용되지 않은 조항이 유의미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경우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yaml에 충분한 규정이 담기지 못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을까? 
  11. 좋아. yaml에 없는 보조 정보가 어떻게 정리되는지 예시를 보여줘.
  12. (이 뒤에 변환 코드까지 달라고 해봤지만 매우 단순한 문자열 감지뿐이어서 참고는 되지 않음) 

 

ChatGPT에 적힌 내용을 모두 신뢰하는 건 아니고 큰 틀에서 어떤 키워드가 있는지만 본다면 Rule as Code (RaC)가 가장 그럴듯하다. 이걸로 검색을 해보면 OECD 문서가 나오기도 해서 시중에 진짜로 쓰이는 용어인 것 같다.

개념 자체는 이미 알고 있다. 2006년 출판, 2009년 한국에 번역된 로렌스 레식의 코드 2.0을 당시에 읽었고 그 전에 나왔던 저작들도 접했었다. 또한 오픈소스 동네에서 지내며 실생활에 프로그램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체감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변동증감하는 코드가 그 자체로 곧 규정으로 기능한다는 개념도 쉽게 수용했다. 아마 영어권 화자라면 code라는 말 자체를 프로그램과 규정으로 구분해서 받아들일 필요 없이 그냥 중의적인 표현으로 보았겠지.

ChatGPT와의 대화가 끝으로 가면서는 실제 법률을 어떻게 코드화는지 사례를 보여주기에, 개별 사례보다는 코드화 그 자체의 원리나 패턴을 물었고, 실제 문언에서 if-then-else를 어떻게 뽑아내었는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애초에 법령 자체가 코드라면 이런 변환 과정 자체가 없어도 되고 문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경우도 더 적을 것이다.

 

코드가 법이란 건 알고 있다. 다음은 법률이 코드여야 한다의 순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