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전자책에서 TTS를 켜서 귀로 듣는 편이다. 종이책을 직접 다 보기엔 눈도 피곤하고 금방 집중력도 떨어지곤 해서다. 전에는 교보문고 전자도서관 등에서 자치단체 공공도서관을 통해 읽곤 했는데 얼마 전에 밀리의 서재에서 AI TTS라는 게 나와서 목소리 품질이 꽤 좋아져 만족스럽다.
그렇다고 아예 화면을 안 볼 수도 없는 게, TTS가 읽어준 게 억양과 발음이 모호해서 무슨 말인지 직접 봐야 한다거나 앞에서 무슨 말을 했길래 이 대목이 이렇게 된 건지 다시 봐야 한다거나 가끔은 정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인상적인 대목도 있거나 등등 여러 경우가 있다. 거대한 확대경이 붙은 자동 발화 독서대 같은 거랄까.
하지만 전자책 시장의 DRM 정책은 이 과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크롬캐스트를 통해 화면을 공유하면 전자책은 그냥 검게만 나온다. 전자책 화면은 DRM 기술로 제한되어서 다른 기기로 전송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방법을 찾다가 결국 안드로이드 기기 자체가 DP Alt로 외부 모니터 출력을 지원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이 기능이 들어가면 기기 가격이 꽤 비싸져서 결국 2025년 하반기인 현재에 2023년 출시 기기를 중고로 사야했다. Y700 2세대.
드디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노트북에 외장 모니터를 연결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안드로이드 기기에 USB-C 케이블로 모니터를 연결하면 그 전의 해상도 설정은 사라지고 무조건 그 모니터가 지원하는 최대 해상도로 설정되었다. 4K 모니터이기 때문에 FHD로 다시 바꿔야 글자를 눈으로 따라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모니터를 뺐다가 다시 꽂을 때도 그리고 해상도를 바꿀 때도 아마 이 기기는 디스플레이 공간을 완전히 새로 구성하는 것인지 거기에 떠 있는 앱은 몽땅 초기 상태로 되돌아간다. 손이 많이 간다. 2023년 구세대 기기라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OS가 나름 최신이니 그런 문제는 아니겠지.
USB-C로 연결한 뒤에 오디오 출력도 약간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안드로이드 기기 자체 스피커로 소리를 내거나 연결된 모니터 스피커로 소리 내는 선택지가 있는데 나는 이미 그 모니터는 크롬캐스트 기기에 연결하면서 저품질 내장 스피커는 음소거로 바꾼 상태라 모니터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 가구 배치를 새로 정리하면서 스피커에 입력 포트를 다 써버려서 더 뭘 어떻게 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미 스피커에 물린 리눅스 장치에서 블루투스 오디오 프로파일을 활성화해서 안드로이드가 블루투스로 소리를 보내면 블루투스 신호를 받은 리눅스가 거기 물린 스피커선으로 소리를 다시 보내는 식으로 일단 정리를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꽤 번거로운데 밀리의 서재 앱이 한결 더 상황을 곤란하게 만든다. 교보문서 전자도서관 앱이나 교보문서 e북 앱은 안 그런데, 밀리의 서재는 외부 모니터로 띄워두고 TTS를 재생한 상태에서 블루투스로 연결했던 마우스를 연결 해제하면 TTS 재생이 멈춘다. (외부 모니터 없을 때는 멈추지도 않는다) 모니터를 연결하고 나면 기기 본 화면을 터치패드 모드로 바꾸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마우스랑은 편리함이 완전 다르기 때문에 가급적 마우스를 쓰고 싶었을 뿐인데. (로지텍 마우스라서 연결된 3가지 기기 중에서 잠깐 바꾸면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이걸 밀리의 서재에 1:1 문의로 넣었더니 '블루투스 기기에 대한 최적화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질문 내용에 대해서는 한 문장으로 답변을 마치고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은 '외부 화면은 차단하고 있는데 왜 그게 된다는지 모르겠고 아마 그 자체가 에러' 운운으로 길게 이어진다. '너 혹시 나의 소중한 DRM을 깨뿌순 거니??' 하는 붉고 굵은 글자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다음 밀리앱 업데이트에는 아예 DP Alt 안에서도 못 쓰게 되는 건가 괜히 무서울 따름이다.
'큰 화면으로 보려는 수요가 있다는 걸 무시'하지 말아달라고 다시 답을 달았다. 당신의 눈이 언제까지나 작은 화면의 작은 글씨를 감당해낼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