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재테크라고 하는 분야에 밝지 못하다. 투자 성향 진단을 하면 보수적인 타입으로 나온다. 손에 쥔 것도 없고 손에서 놓아내는 걸 겁내기도 하고. 그래서 경험치를 높이고자 은행에서 대출도 소액으로 해보았고, 약간의 여유자금이 생기고부터는 예적금도 만들고, CMA도 이것저것 만들고 P2P 투자도 해보았다. 증권도 소액으로 몇 번 사고 팔고 하면서 주식 시세라는 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강은 체감하고 있다.
P2P 투자도 업체가 많고 아직은 원숙기라고 할만한 시장은 아니니 몇 군데 업체에 소액으로 투자를 했었다. 렌딧이 이모저모로 귀에 많이 들리던 업체라 가장 먼저 찾았고, 부동산 투자를 주로 한다는 업체도 기웃거리다가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두 번 투자금을 넣어보았다. (토스가 한 때 스스로 대부업체 이름을 달려고 했다가 황급히 발을 뺀 뒤에 서비스에 연결시킨) 8퍼센트도 써보았다.
8퍼센트는 내 기준에는 웹사이트나 웹서비스 구성이 탐탁치 않아서 (초기 가입 때 주는 포인트가 써먹기에 유명무실한 느낌이라 별로라고 판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웹사이트가 좀 가벼운 느낌이고 그래프 곡률 표시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다) 딱 한 번 10만원의 투자를 했다. 1만원씩 10개의 채권을 사들였다.
상품명 "0000호 개인자금", 이것이 현재 8퍼센트에서 사들였던 10개 채권 중 유일하게 남은 채권이다. 8퍼센트가 표기한 등급은 A-, 10개 중 두번째로 높고, 12개월동안 원리금균등 25%, 월이자지급 75% 방식으로 상환할 계획이었다. 2회의 연체를 포함한 10회의 지급, 2500원을 끝으로 이 대출자는 개인회생을 신청하였고, 3주 정도 뒤에는 "개인회생금지명령"이라는 분류의 내역이 추가되었다. 그로부터 시일이 꽤 지났음에도 8퍼센트가 별다른 변제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이 채권의 남은 금액은 물 건너간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 "투자 상품"을 "자세히 보기"하였다. 이 대출자는 30대 남성으로, 12년 가까이 공기업 혹은 공무원에 속하는 직장에 정규직으로 일했다. 월 평균 소득도 나보다 훨씬 높았다. 한 달에 카드를 쓰는 금액은 나와 비슷했다. (카드는 신용정보사에 집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으니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그리고 빚이 9천만원 있었다. 8퍼센트가 표시하는 부채 분류 중 "은행/보험/학자금"으로 잡혀 있으니 나이나 규모를 생각하면 학자금은 아닐 것이고 대충 주택 관련 1금융권 대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용등급은 KCB 기준 560점 정도로 낮게 유지되다가 심사 4개월 전부터 아래로 출렁거리더니 어쩐 일인지 심사 시점에는 급하게 올라 832점을 기록했다. 이 대출자는 8퍼센트를 통해 4천만원을 빌렸다. 그 뒤는 나도 안다. 비교를 위해 10개 채권 중 첫번째였던 A 등급의 다른 상품도 같이 보았다. 다른 대출자는 30대 여성으로, 월 소득은 더 많고 더 오래 재직했다. 은행 빚도 비슷하게 9천6백만원 있었다. 신용등급은 앞서와 달리 꾸준히 높았다. 5천만원의 대출금은 특이사항 없이 모두 상환되었다.
12년째 공기업에 일하던 30대 남성은 왜 나보다 많이 벌고 카드 소비도 많지 않고 주거도 안정적이었을 것 같은데 굳이 금융권도 아닌 P2P 대부업체까지 와서 대출을 일으키고 변제를 마치지 못한 채 개인회생 제도를 찾게 되었을까? 나이가 많은 건 아니니 본인이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본인이 사고를 당했다면 대출을 일으키는 것부터가 힘들었을 테니, 어쩌면 부모나 다른 가족이 급환이었던 걸까? P2P 업체에 오기 전까지 금융권은 이미 돌만큼 돌았을 테고 (그래서 몇 달간 신용점수가 떨어졌을 것이다) 실제 부채는 더 많았겠지. 애초에 잡혀있던 9천만원의 부채도 추심이 들어갔을 것이다.
주변에 P2P 투자를 언급할 때 쉽게 표현하기 위해 "쩐주에게 돈을 댄다"고 해왔다. 표현이 좀 속되지만 의미가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연체가 발생했다거나 하는 통지가 오면 '내 돈 내놔'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지금도 P2P 업체의 "투자상품" 목록에는 "개인자금"이니 "대환대출"이니 "사업자금"이니 하는 구분으로 여러 줄이 나열된다. 상품이란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 한 줄마다의 너머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모두 각자 열심히 살다가 힘든 일이 있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든 일이란 결국 돈의 문제 아니겠는가.
나는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큰 돈이 녹아날만한 일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기껏해야 은행 이율보다 높은 이율을 받을 데가 어디 없나 하는 정도로 투자라는 걸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나보다 더 좋은 직장에 더 오래 일하면서 수입도 더 많던 사람도 빚쟁이가 되어서 낯모르는 사람에게 추측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