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카드와 연계되어 적금으로 입금되는 기능이 아무래도 재미난 것이어서 꾸준히 쓰고 있다. 대단한 금액이 적금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카드를 긁을 때면 돈을 썼구나 하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카드를 몇 차례 바꿨는데 이 기능이 카드끼리 직접적으로 옮기는 개념은 없고, 한쪽 카드에서 해지한 다음 다른 쪽에서 다시 신청하는 식으로만 된다. 오늘 아침에도 그걸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안 되었다. A카드에서 해지는 (왜인지 모르지만 두 번을 반복하고서야) 했는데 B카드로 신청이 안 들어갔다. 이미 적금 계좌를 쓰고 있다는 뉘앙스의 오류 내용과 오류 코드가 나왔다.
은행 공식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린 남자 목소리가 받는다. 대략 상황 설명을 하니 오류 코드를 묻는다. 뭔가 찾아보는지 조금 뒤에 그 오류 코드에 해당하는 오류 내용이 뭔지를 읽어준다. 마음 속으로 조금은 웃고 조금은 한숨을 쉬며 답해줬다. '네, 그렇더라구요...' 조금 뒤에 어른 여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신입 행원이어서 옆에 있다가 전화를 바꿔 받았다고 한다. 상황 설명을 다시 했다.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전화가 왔다. 그쪽에서 설명하기로는 예전에 쓰던 C카드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데, 카드가 이미 해지되어서 온라인으로는 처리할 수 없으니 지점을 방문하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애초에 C카드와의 연결이 해지되지 않았으면 그동안 쓰던 A카드로 연결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잘 쓰던 A카드를 해지했는데, C카드가 거기서 왜 나와? 아마도 전산상 어딘가에서 꼬인 거였을 테다.
상황 설명을 다시 하고, 얘기해준 내용은 알겠지만 예전 카드가 아직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니, 혹시 해지만이라도 처리해주면 다시 신청하는 건 내가 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거기는 고객센터라 그런 업무는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점을 가야 한다고 그런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얘기해주는 건 알겠고, 컴플레인을 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생각해보면 이 시점에 그냥 공식적인 불만 접수를 했어야 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전화가 왔다. 지점에 문의는 해놨지만 지점이 바쁜지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고. IT부서에 문의했고 답이 오면 알려주겠다는 얘기도 한다. 중간 확인전화여서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뒤에 지점에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지점에 갈 때 자주 보았던 행원이었다. 내가 지점에 갈 수 없다고 했다고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자주 가는 지점을 확인해서 지점에 진상 처리건 정도로 전파가 된 뒤에 내 이름이 익숙한 행원이 일을 가져가 맡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한참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다. IT부서의 공식적인 답변으로는, C카드를 중간에 재발급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구카드 연결이 신카드로 자동 연결이 되었고, 그 흔적이 이번에 영향을 끼쳐서 오류를 일으킨 거라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설명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왜 A카드를 등록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C카드의 흔적이 B카드를 연결하려는 오늘에야 문제를 일으킨 건지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통화를 길게 해봐야 들을 수 있는 설명은 다 들은 거고, 풀 죽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확인해줘서 감사하다고 하고 전화는 끊었다. 고객센터 응대 체계가 나를 감정노동자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하던대로 B카드로 등록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썩 공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이 처리되어서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도 애매하게 되었다. 원하던 업무는 완료가 되었고, 공식적인 어필도 없으니, 이대로라면 그냥 진상의 요구를 응대 부서에서 디펜스한 뒤 아무 일 없었던 걸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야무야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