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설탕과자와 경제주체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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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자기가 쓸 것은 자기가 만들어서 썼다. 어지간히 고장나는 건 직접 고쳐서 썼다. 생산 주체와 소비 주체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시대는 기존에 없던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내는 데서 더 나아가 틈새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있었지만 미처 고려되지 않았던 점을 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내고, 혹은 기존에 기성품의 영역에 속하지 않았던 것을 상품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길을 가다가 보았다. 해도 져서 어둑한 인도 위에 작은 가스 버너를 켜두고 양은 국자 안에 설탕이 녹으라고 휘휘 저어대는 아줌마를. 쪽자(혹은 뽑기)를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바닥에 앉아서 작은 국자를 쥐고 열심히 저어대는 그 모습이 너무 걸려서 되돌아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뭐 파는 거예요?' '뭐 파는지도 모르고 앞에 앉았나ㅎ' 한 장에 천원이라고 했다. 미리 납작판에 눌러서 하트 모양 틀과 별 모양 틀을 찍어놓은 상태로 흰색의 반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채로. 그 자리에서 직접 바늘로 찔러가며 해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하긴 그럴 거였으면 좌판이 훨씬 컸어야 되겠지. 모양 당 하나씩 두 장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원래 이 쪽자라는 것은 국민학교 앞 어느 귀퉁이 좌판에서 애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연탄불 위에서 국자에 담긴 설탕을 나무젓가락으로 저어가며 녹이고는 잘 녹았다 싶으면 설탕 녹은 물이 진득하게 묻은 나무젓가락 끝으로 소다를 조금 찍어서 설탕물을 갈색으로 부풀리는, 이를 테면 자기가 직접 생산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재미이자 세밀한 조절 능력을 요하는 부분이다. 설탕을 너무 많이 담고 시작하면 제대로 녹일 수가 없어서 국자가 넘치거나 밑은 먼저 녹아서 타기 시작하는데 위는 아직 설탕가루가 남는 일이 생기고, 혹은 소다를 너무 적게 넣어서 제대로 부풀지 않거나 너무 많이 넣어서 크기만 크고 속은 비고 맛은 쓴 일도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소다가 잘 섞인 국자를 아저씨에게 들고 가면 판판하고 깨끗한 철판에 쏟아놓고 잘 눌러 이내 잘 굳은 얇은 설탕과자가 나온다. 이때 모양틀을 덧대면 이제는 바늘을 들 차례다. 바늘에 혀끝으로 침을 묻혀가며 과자를 녹이거나 혹은 바늘끝으로 촘촘히 틀에 눌린 자리를 부숴내면 그제서야 완성이다. 워낙 잘 부서지는데다 굳을 때 생긴 결까지 있어서 모양에 맞게 잘라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줌마가 파는 쪽자는 이런 과정들이 모두 제거된 상품이다. 아무래도 금방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만드는 과정은 줄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틀을 잘라내는 것이라도 할 수 있었어야 했다. 쪽자가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테니 단순히 완성된 것을 파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그 앞에 여자 둘이 지나면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다. 아줌마가 파는 쪽자는 빠지면 안 되는 부분을 뺀 상품이다. 아줌마는 틈새 시장을 노린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생산과 소비의 주체를 완전히 분리하면 안 되는 상품에서 생산의 주체를 제거해버렸다.

아니, 맛이 좋았으면 전혀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줌마의 쪽자는 소다가 아주 살짝 많이 들어가서 좀 썼다. 두 개가 모두 비슷했으니 아줌마의 레시피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음에 보면 소다를 조금 줄이시라고 얘기해야 되겠다.